[2024.07.08] 전력망이 국가 경쟁력…송·배전망 건설·확충 사활 걸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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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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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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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우리는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과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 간의 세기의 바둑 대결을 지켜봤다. 결과는 4대1로 알파고가 승리하며 AI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에 두려움도 느꼈다. 2022년 챗 GPT가 등장하면서 간단한 질문으로 훌륭한 답을 얻고 새로운 콘텐트를 양산하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AI를 이용해 간단한 텍스트 명령어만으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이제는 영화도 몇 분 안에 뚝딱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다.

빌 게이츠 MS 창업자는 AI가 인간의 노동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고 새로운 산업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은 수요를 절감하기보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확대한다는 영국의 경제학자 스탠리 제번스의 역설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정도의 잠재력을 가진 AI의 효율성 증가는 결국 AI 사용과 활용을 증가시켜 더 많은 분야에서 AI 수요를 창출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이다.

이렇게 만능인 AI에도 약점이 존재한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력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미래로 전환하려면 미국에만 현재 전력 수요의 3배가 필요하다고 했다. 구글 검색에 소모되는 전력량이 0.3Wh지만 챗 GPT를 사용하면 2.9Wh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력 소모량이 약 10배 증가한다.


AI 시대의 핵심 요소는 저렴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전력 소비를 충족시킬 수 있느냐다. 또한 AI 시대에 가장 필요한 분야가 데이터 센터다.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해 저장하는 데이터 센터가 2026년에는 현재의 2배 이상 필요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데이터 센터는 전기를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미래 첨단산업은 AI를 기반으로 하고, AI 기술 경쟁력이 국가 경제력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정 전기화가 핵심이었던 탄소 중립에서 AI로 인한 첨단 전기 시대 도래로 시대의 화두가 옮겨가고 있다. 각국은 첨단 산업을 자국화하고 국제 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이 과정에 전력산업 혁신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산업혁명 수준의 전력 시스템 개선을 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도태되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어서다.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기 공급을 위해 각국은 그 나라만의 전력 믹스와 전력 인프라 구축에 천문학적인 재원을 쏟아붓고 있다.

AI로 인한 첨단 전기 시대 도래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통해 중국에 빼앗긴 태양광과 배터리 등의 친환경 전력 산업을 미국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4300억 달러(약 600조원)를 투자하기로 했고, 인프라투자고용법(IIJA)을 통해 도로와 교량, 철도, 대중교통 및 전력 인프라에 IRA보다 더 많은 돈을 쏟아부을 작정이다. 유럽도 탄소중립산업법을 통해 첨단 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한 친환경 전력 설비 등에 천문학적 비용을 투자할 방침이다.

세계 경제는 기존의 세계무역기구(WTO)를 기반으로 한 자유무역주의가 절대 선으로 여겨지던 데서 벗어나 친환경을 내세운 보호무역주의가 팽배한 시절로 변하고 있다. 최근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국수주의 현상까지 나타나며 우파 중심으로 정치 지형이 변하고 있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극심한 에너지 인플레이션이다.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도 결국은 정당에 상관없이 에너지가 촉발한 인플레이션을 어떤 후보가 잘 잡을 수 있느냐를 놓고 경쟁 하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0GW 이상 필요

한국도 첨단 산업 강화와 이를 위한 전력 인프라 구축 강화에서 예외일 수 없다. 한국도 최근 반도체와 2차 전기, 디스플레이를 첨단 산업화하기 위해 7곳을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하고 612조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용인을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로 지정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42년까지 562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국가 핵심 산업이자 제1 수출산업인 반도체 산업이 다른 나라 경쟁 업체와 초격차를 더 벌이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다. 대만의 TSMC가 미국 엔비디아에 반도체를 납품하면서 한국 반도체 업체와의 AI 반도체 경쟁에서 한발 앞서가고 있다. 또한 레거시 반도체에서는 중국 화웨이 등이 저가 공세를 벌이며 치고 올라와 5나노 수준까지 접근하고 있다고 한다. 첨단 AI 반도체 경쟁에서 대만과 중국의 공세를 타개해야 할 대안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용인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이 순차적으로 들어서는 데 있어 풀어야 할 가장 큰 난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필요로 하는 전력 사용량을 어림 추산해 보면 적어도 10기가와트(GW) 이상일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공정은 한 톨의 먼지도 없이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전기 플라스마 장치 등을 통해 클린 공정

라인을 건설해야 한다. 현재 기준으로 반도체 공장 한 개가 약 1.3GW를 소모하게 되고, 이는 한국형 원자로인 APR-1400 모형 한 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에 맞먹는 수준이다. 이러한 공장을 8개 이상 건설할 계획인 만큼 필요로 하는 전력량이 10GW 이상이라고 발표했지만, 클린룸의 숫자가 두 배로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하면 실제로는 10GW를 훌쩍 뛰어넘는 전기를 소모할 수도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용인 지역에 신규로 3GW LNG 발전소를 건설해 초기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로 했지만, 나머지 전력은 동해안 원전에서 송전망을 끌어오고 서해안의 해상 풍력 단지에서 추가로 전기를 이송해 와야 한다. 결국 동해안과 서해안에서 두 갈래의 송전망을 적기에 건설해야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정부가 지난 5월 발표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한 첨단 산업과 데이터 센터 수요까지 포함해 전력 수요 등을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탄소 중립·녹색 성장 기본법을 지키기 위해 원전과 신재생, 수소·암모니아 등 무탄소 전원을 대폭 확대하게 된다. 2038년까지 원전과 재생에너지, 수소·암모니아 등 무탄소에너지 발전 비중은 70.2%로 늘어나게 된다. 재생에너지(총 115.5GW) 비중은 32.9%까지 대폭 늘고, 원전도 신규로 3기 정도를 건설해 35.6%를 차지하게 된다.

전력망 건설, 주민 설득이 필수

제11차 전기본을 뒷받침할 송·배전 계획은 추후 발표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적기에 건설되고 운영되려면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재생 에너지 발전 설비는 주로 남해안 지역에 설치될 것이다. 원전은 동해안 지역에 신규로 건설될 전망이다. 결국 용인까지 송전망을 어떻게 연결해 올 것인가가 가장 큰 관건이다. 우리는 밀양 송전탑 사태를 기억한다.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지역 주민의 반발은 예상 가능한 일이다. 한국전력(한전)의 송·배전망 건설 사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지 오래다. 총연장 34.2㎞인 북당진-고덕 초고압직류송전(HVDC)은 2014년 7월 공사를 발주했지만 지방자치단체와 주민 반대로 2년간의 법정 소송을 거쳐서 지난 5월 완공됐다. 송·배전망 건설은 해당 지역 주민 설득과 지자체와의 협력으로만 가능하다. 엄청난 사회적 수용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그래서 남해안에 깔린 태양광 발전 시설과 남·서해안에 허가가 나간 해상 풍력 발전 시설에서 만든 전력을 내륙 지역을 거쳐 수도권의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까지 끌고 오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제2·제3의 밀양 송전탑 사태를 겪어야 할 수 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해안과 해저를 통과하는 HVDC를 건설하기로 했지만 이 또한 어민과 경과지 내륙 주민을 설득하고 보상금을 지급하면서 건설해야 한다. 2개의 구간으로 나눠서 신해남-태안-서인천의 430㎞와 새만금-태안-영흥 190㎞를 건설해야 하고 여기에는 약 7조9000억원이 소요될 예정이다. 준공 목표 시점은 2036년이다. 4조6000억원이 소요될 동해안-수도권 HVDC(280km)를 2021년까지 건설하기로 했지만 2023년 12월이 되어서야 첫 철탑 작업이 시작됐다. 완공은 2026년으로 미뤄졌고 구간마다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과연 목표 시점에 완공될지는 의문이다. 발전 설비 추가 건설보다 송전망 구축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전력 산업=첨단 산업’ 인식해야

전력망의 문제는 이제 전력만의 문제가 아닌 산업과 국가 경쟁력 문제다. 전기를 끌어오지 못하면 모든 산업 단지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국가 미래 경쟁력을 위한 투자가 전력망 건설에 달려있다. 한전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는 국가가 미래 산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국회에 계류된 ‘국가기간전력망 특별법’을 하루속히 처리하고 투자와 보상을 통해 조속히 송전망 건설과 배전망 확충에 나서야 한다. 더 나아가 전기의 역할을 산업의 원재료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전력 산업 자체를 첨단 산업으로 인식해야 한다. 전력 시스템의 강건한 구축을 통해 다른 산업 발전과의 선순환 경제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탄소 중립 이행과 AI 시대가 도래하는 시점에서 부가가치 높은 첨단 전략산업 유지는 전력 산업의 혁신과 개혁이 그 출발점이어야 한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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