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5]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노후 화력발전소의 역할

date
2024.04.16
name
김경화
e-mail
view
21

[이투뉴스 칼럼 / 조형희]


우리나라에 건설된 첫 화력발전소는 1930년 준공된 서울화력발전소(당안리 발전소)이다. 서울화력발전소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연료 전환을 거쳐가며 운용되었지만 1930년대 준공된 1, 2호기가 1970년에, 그리고 1970년대 준공된 4, 5호기가 2017년에 각각 폐지되었으며, 현재는 세계 최초의 지하 발전소로 재탄생하여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대용량 석탄화력발전소의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중심지에 건설되었으며, 이러한 발전소들은 2010년대까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통해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지탱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기후 위기가 점점 심각해짐에 따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탄소 배출량을 대폭 줄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오래된 석탄 화력발전소를 LNG 복합발전소로 전환하겠다면서, 2036년까지 수명이 다한 28기의 석탄 화력발전소를 LNG 복합발전소로 전환할 계획임을 밝혔다. 국내 전력 수요 및 공급의 특징을 살펴보면, 지형에 따른 전력망의 고립(에너지 섬), 열악한 재생에너지 자원 및 큰 간헐성을 들 수 있다. 때문에 기저부하를 담당하던 석탄화력발전이 사라진다면 갑작스러운 천재지변에 의해 일부 지역에 전력 공급이 중단되는 등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최근 전기차의 보급 확대와 데이터 센터의 용량 증가로 인해 전력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에너지 전환을 시행하기 전에 노후 석탄 화력발전소의 처리 방안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에너지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외부 요인에 의해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해질 위험을 높인다. 이는 국제 정세 변화, 기후변화, 천재지변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우리를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독일로 이어진 천연가스 수송관 노르트 스트림 1(Nord Stream 1)의 공급량을 평상시의 20% 수준까지 줄이는 등, 에너지를 무기화 하는 상황은 석탄 발전 비중을 줄이고 원전까지 폐지한 독일에 큰 어려움을 야기했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유럽뿐만 아니라 러시아 극동 지역 석유·천연가스 개발 사업인 사할린-2 프로젝트에 참여(2021년 기준 LNG 수입량의 8.8%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 역시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우리나라도 2021, 2022년에 LNG 가격이 폭등하며 난방비 상승과 같은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이러한 상황은 탄소중립을 위한 노력과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국제 정세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국내에서 지속 가능하게 확보할 수 있는 자원이므로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는 큰 이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기후 변화에 영향을 받는 ‘간헐성’이라는 본질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양만큼 발전할 수 없고, 날씨 등 주변 환경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달라지므로,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보장하기 어렵다. 

이러한 맥락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노력과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재생에너지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최근 석탄 화력발전의 중요성이 재조명받고 있다. 예비 전력원으로서의 석탄 화력발전소는 연료(석탄) 저장이 용이하기 때문에 긴급 상황에서의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노후 석탄 화력발전소를 완전히 폐지하지 않고, 최소한의 인력과 비용으로 긴급 가동할 수 있게 관리하면 비상시에 석탄만 보급해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실제로, 석탄 화력발전소 퇴출에 누구보다 앞장서던 독일과 프랑스 등 EU도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에 폐지했던 석탄 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여 전력 수급 안정성을 확보하였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2010년 20~30%에 달하던 원전 비중을 2013년 1% 수준으로 줄이고 석탄 화력발전으로 이를 대체했다. 당시 전력 설비 중 화력발전이 59.1%에 달했고 최고 수요 대비 예비율을 38.5%로 유지하는 등 유휴 석탄 화력발전소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 국가 재난 사태에서도 전력 수급 대란을 피할 수 있었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과 에너지 안보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은 많은 국가들이 직면한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한국과 에너지 환경이 비슷한 일본은 2021년 제6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석탄 화력발전의 비중은 줄이되, 고효율 시설은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으며, 이를 위해서 석탄 화력발전의 효율을 높이고 탄소 배출은 줄이는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사키카미지마’ 섬의 석탄 화력발전 실증 실험단지에서는 석탄을 가스로 만들어 발전 효율은 높이고 탄소 배출은 줄이는 기술과,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회수해 재활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치현 헤키난 화력발전소에서는 연소 후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암모니아와 석탄을 섞어 연료로 쓰는 발전기술을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접근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재생에너지 발전을 위한 환경적 입지 또한 불리한 국가에서 필수적인 전략이다. 우리나라 또한 이와 유사한 방법을 통해 탄소중립 목표 달성과 에너지 안보의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태안에 위치한 석탄가스화발전소(IGCC) 운영, 배기 탄소 포집기술(CCS), 암모니아와 석탄 혼소기술 개발은 노후 복합 화력발전소를 활용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러한 기술적 접근 방안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유지하면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유용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도 탄소중립을 실현함과 동시에 에너지 안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복잡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석탄 화력발전소의 폐지가 필수적이지만, 에너지 안정성을 위해 모든 화력 발전소를 급격히 폐지하지 않고 일정 수준에서의 유지가 필요하다. 이는 우리나라가 재생에너지 환경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지형적으로 전력망이 고립된 '에너지 섬'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에 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또한, 반도체, 조선,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중공업 등 에너지 집약적 산업이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우리나라는 발전원 다변화를 통해 국제 정세 변화나 기후 급변과 같은 외부 요인으로부터 에너지 안보를 지킬 수 있다. 비상 상황에서 화력발전소를 긴급 가동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인력과 비용으로 유지하는 전략은 에너지 안보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대비책 중 하나이다. 노후 화력발전소를 무조건 폐지하기 보다는 효율성 개선, 탄소 포집 기술, 탄소 감축 연구 등에 투자하고 발전원을 다변화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인 접근이 될 것이다. 지금은 불안정한 국제 정세와 탄소중립 목표, 기후 변화 대응, 그리고 지형적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중장기 에너지 믹스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출처 : 이투뉴스(http://www.e2news.com)

file
there is no file